[KBS NEWS] 미국인들은 왜 ‘돈’을 내고 뉴스를 볼까
‘워싱턴 포스트’의 살아남기 위한 실험, 6년째 진행중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8백 미터 떨어진 대로에 자리한 ‘워싱턴 포스트’ 본사를 찾았다.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린 특종을 탄생시킨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근무했던 그 투박한 건물이 아니었다. 지난 2015년 번듯한 고층 빌딩으로 사옥을 옮긴 워싱턴 포스트, 실시간 뉴스 앱 화면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설치된 입구에서부터 ‘꽤 잘나가는 IT 기업’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6년 전, 이 신문사의 새 주인이 된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의 위력이 느껴졌다. “2013년(베이조스가 회사를 인수한 후) 모든 게 바뀌었다”는 게 소속 기자들의 이야기였다. 당시 미국 3대 유력 언론사 중 하나인 워싱턴 포스트가 아마존 설립자에게 넘어간단 소식은 ‘종이 신문의 쇠락’을 알리는 대표적 사례로 한국 언론 지면을 장식했던 기억이 난다. 4대째 워싱턴 포스트를 운영해오던 그레이엄 가문은 매각을 결정하면서 “계속 가지고 있어도 생존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제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창의 널찍한 인터뷰 스튜디오들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방문한 기자들을 안내한 데이비드 나카무라 기자는, 이곳을 영향력 있는 각계 인사를 초대해 주기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끌어내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워싱턴 포스트에서 일명 ‘오늘의 초대석’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주목받는 인물을 단독 인터뷰해서 다음 날 신문 지면에 대서특필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인터뷰를 온라인 생중계하고, 그 현장에 독자(시청자)들도 초대하는 쇼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최근에도 마이크 펜스 부통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이 출연한 ‘워싱턴 포스트 라이브(The Washington Post Live)’라는 이름의 이 쇼를 방송한 뒤 신문과 온라인 홈페이지에 기사와 짤막한 동영상 클립들이 따라오는 것은 물론, 미국 주요 매체들도 관련 기사를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카무라 기자는 이것이 워싱턴 포스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여러 마케팅 전략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제프 베이조스는,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기사 편집 등에 관여하는 대신, 뉴스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독자들에게 도달시킬 것인지만을 종일 연구하는 최상의 기술자들을 대거 채용하는 변화를 도입했다. 지금도 기술자 800여 명이 뉴스룸에서 기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뉴스 플랫폼과 뉴스 검색틀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카무라 기자는 “취재 현장을 뛰는 기자들은 시스템 개발이나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고의 기술자들이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개편하고 기사 툴을 개발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데이터 과학과 뉴스 콘텐츠의 힘, ‘온라인 구독료’
‘6년간 영업 수익 40% 감소’. 지난 2013년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할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성적표다. 이마저도 다른 영업 이익이 신문 지면의 적자를 메워 유지된 수치였으니, 큰 위기임이 분명했다. 제프 베이조스의 손에 들어간 워싱턴포스트는, ‘우리는 이제 미디어테크놀로지 기업’이라는 선언과 함께, 데이터 과학을 접목하는 실험에 들어갔다.
‘인터넷 세상에서 뉴스는 무료다’라는 인식을 뒤집어,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듯 뉴스를 볼 때는 ‘구독료’를 내게 하기로 했다. 홈페이지에서 20개의 기사는 무료로 볼 수 있게 하되, 그 후부터는 일정 비용을 내도록 한 것이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무료로 읽을 수 있는 기사 수가 줄고, 무제한으로 읽으려면 연간 100달러(한화 약 12만 원)를 지불하라는 알림을 띄웠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실험을 시작한 지 채 4년이 되지 않은 2017년 초, 워싱턴포스트는 100만 유료 독자를 확보했다.
이 같은 성공 요인으로 무엇을 꼽느냐고 묻자, 나카무라 기자는 “기자로서는 평범한 뉴스로 가득한 ‘유명 종합 일간지’가 아닌 ‘정치’에 특화된 콘텐츠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가 만드는 정치 콘텐츠는 돈 내고 볼만하지 않겠어?’ 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에 집중했고, 다양한 이벤트, 기술력을 총동원해 ‘충성 독자’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워싱턴 포스트 라이브’뿐 아니라 각 분야 칼럼을 쓴 기자가 ‘라이브 채팅(Live Chat)’에 출연해 독자들과 깊이 있는 분석을 나누는 코너를 만든 것 역시, 질 높은 기사와 저널리스트 개개인에 대한 신뢰를 쌓는데 기여했다. 기사뿐 아니라, 영상 역시 유료 콘텐츠로 분류돼있는 점 역시 ‘미디어 기업’으로서의 전략을 읽을 수 있는 단면이다.
아마존처럼, 워싱턴 포스트에도 빅데이터의 힘이 동원된 점도 결국 성공했다. 독자들의 구독 패턴을 분석해 이메일이나 SNS로 맞춤형 뉴스를 보내는 ‘뉴스레터’가 꽤 안정적인 수익을 안겨주게 된 것인데 어떤 기사를 얼마 동안 읽는지 고객 반응을 끊임없이 읽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많이 읽힐 것 같은 뉴스’까지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건 인공지능의 몫이다. 온라인 기사를 보려 돈을 내고, 뉴스레터를 클릭해 읽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니, 포털을 통해 모든 뉴스를 무료로 소비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한편으로는 “유서 깊은 옛 건물을 떠나 이런 IT 기업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게 기분이 묘하다”며 소속 기자들은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140여 년 전통의 언론사가 인터넷 공룡의 먹잇감이 됐다는 외부 평가가 아니더라도, ‘테크놀로지 기업’의 길을 선언한 ‘IT 전문가’ 제프 베이조스의 실험에 대한 사내 여론에도 온도 차가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새로운 실험과 전략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워싱턴포스트의 ‘뉴스’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냉정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기자 윤리’ 감시 기자가 있는 뉴스룸, ‘NPR’
워싱턴 포스트에서 차로 10여 분 정도 더 가면 ‘NPR’ 본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TV와 라디오 모두를 송출하는 우리나라의 KBS와 달리, 미국 공영방송은 TV를 송출하는 PBS와 라디오를 담당하는 NPR로 나뉘어있다. NPR(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National Public Radio)은 미 전역의 1천 개 지역 라디오 방송국 네트워크로 송출돼 일주일 평균 청취자 수가 3,77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청취율이 상당히 높았다. 한국 기자들을 안내한 NPR 기자는 “미국은 상업 매체 수가 셀 수 없이 많은 만큼, ‘공영성’을 가진 NPR에 대한 기대가 높다. 어지간한 종합 일간지 40개 정도의 구독자 수와 맞먹는 청취자들이 뉴스를 듣는 만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팟캐스트 채널을 20개 넘게 런칭하고 ’NPR One’이라는 전용 앱을 개발하는 등, 기존 올드 미디어가 청취자들을 잡으려는 시도들이 활발한 점은 우리나라와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예를 들어, 실명“윤리 담당 에디터”로 스스로를 소개를 하는 백발의 기자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일이다. “저는 뉴스룸에 상주하면서 기자들이 윤리에 어긋나는 기사를 쓰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전담하는 기자입니다. 이 언급되는 취재원이 갑자기 거부할 때 최종 기사를 어떻게 내보낼지 해당 기자와 바로 의논을 시작합니다. 기자가 시간에 쫓겨, 또는 특종의 유혹 때문에 기자 윤리를 어기는 걸 막는거죠” 공영 라디오 뉴스로서의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들을 도입해가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광고 없는 뉴스’에 지갑을 여는 애청자들
‘공영 라디오’ 기자들이다 보니, KBS에 관한 관심도 컸다. KBS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묻기에 수신료 재원 방식을 간략히 설명했는데, NPR 기자들은 수신료라는 강제 징수 방식을 다소 의아해 했다. “우리는 정부 재정으로도 운영되지만, 시민들의 기부에 의존하는 부분도 상당합니다. NPR을 지지하는 애청자들이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어 기꺼이 후원자가 되는 거죠.” 실제 NPR의 모든 프로그램 중간중간에는 수시로 기부금 모금 방송이 등장한다. ‘광고 없는 ‘진짜 뉴스’를 위해 우리를 도와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그램 중간중간 ‘광고’는 없을까? NPR 기자들은, 상업 광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업 후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언더라이팅 스팟(underwriting spot)이라는 다소 독특한 방식입니다.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을 준 기업의 슬로건과 제품 정보를 간략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거죠. 상업라디오에서 틀어대는 형식의 광고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면서도 광고를 배제하는 전략은, ‘지겹도록 이어지는 광고’가 아닌 ‘진실한 뉴스’를 원하는 애청자들이 결국 NPR을 선택하도록 하는 큰 요인이 되는 것이다.
‘기꺼이 뉴스에 비용을 지불하는’ 시민들
워싱턴 포스트와 NPR 사례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결국 뉴스 소비자가 ‘스스로 지갑을 열어’ 비용을 지급하도록 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상업 미디어든 공영 방송이든 제대로 된 기사와 뉴스를 생산해내기 위해 광고비를 주는 기업이 아닌, ‘뉴스 소비자’를 공략하기로 한 언론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NPR 같은 미국의 공영 방송은 전체 청취자의 10%가 자발적으로 거액을 후원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유료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읽는 독자들은 벌써 수백만이 확보됐다. 이들이 지갑을 여는 것은 비단 콘텐츠 자체를 듣고, 기사를 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질 높은’ 콘텐츠가 사라지길 원치 않기 때문에 기꺼이 ‘기부’와 ‘후원’의 방식을 택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미디어 격동기에서 품질 높은 콘텐츠에 대한 욕구는 더 커졌고, 프로 퍼블리카(ProPublica) 등 비영리 매체에 대한 후원 액수는 증가추세다. 물론,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자발적인 구독과 기부를 선택할 만큼 신뢰감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야만 밀고 나갈 수 있는 생존 전략이다.
출처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219351&re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