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애플·구글은 하는데…“韓 기업, 규제 탓에 사진 분류 서비스 포기”
개인정보보호법 등 데이터 규제로 사업 난항
27일 ‘데이터 3법’ 모법 법안소위 이목 쏠려
“개인정보 이용을 사용자에게 사전 동의 받아야 하는 문제로 사진 자동 분류 서비스 출시를 포기했습니다. 유권해석을 의뢰했는데 방법이 없더군요.”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를 이용한 사진 저장 서비스를 제공하던 국내 A사가 실제로 겪은 사례다. 사진에는 ‘메타데이터’라고 부르는 위치, 촬영 시간 등의 개인 정보가 담겨 있는데, 이 정보를 활용해 사진을 자동으로 분류해주는 신규 서비스를 제공하려다 단념했다는 것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이미 수집한 개인정보라도 처리 목적이 달라지면 다시 명시적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 IT업계 관계자들은 “현실적으로 모든 이용자에게 일일이 동의를 받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애플·구글은 쉽게 하는데… 韓 기업 시장 접근 역차별 논란
외국 업체는 어떨까.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포괄적인 약관 동의 방식으로 비교적 쉽게 신규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다. 실제로 애플과 구글은 현재 국내 이용자에게 사진 자동 분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국내에서 역차별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개인정보를 처리하기 전에 먼저 동의를 받는 ‘옵트인(opt-in)’ 방식을 따르도록 돼 있다. 반면 미국 등에선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널리 활용한다. 이메일을 보낸 후 수신 거부 의사를 밝힌 이용자만 메일 발송대상에서 제외하는 식이다. 신규 서비스를 출시할 땐 옵트아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고객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옮기려다 이용자 동의 문제로 포기한 업체도 있다. 클라우드로 옮기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규제의 문턱을 넘지 못해 서버를 증설해야 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사용자가 급증하자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자체 데이터센터를 닫고,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옮겼지만 한국 업체라면 넷플릭스 같은 대응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개인정보 문제로 해외 시장 접근 기회를 제한받는 일도 발생한다. 유럽은 작년 5월 강화된 GDPR(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을 시작했다. 유럽 시민의 정보가 해외의 서버로 나갈 경우 승인을 받도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유럽 고객을 둔 중소 게임업체나 스타트업의 경우 개별적으로 유럽 당국의 승인을 받는 시간과 비용 부담에 아예 유럽 이용자 접속을 차단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GDPR을 준수하려면 변호사를 선임해 자세한 법률 검토를 받아야 하는데, 작은 기업은 이런 비용을 대는 게 쉽지 않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올 1월에 이 문제를 해결했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GDPR 적정성 평가를 획득해 일본이 EU와 동등한 수준의 독립적인 기구에 의한 개인정보보호 시스템을 갖췄다고 인정받았다. 이로써 일본 기업은 GDPR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국법만 지키면 유럽 데이터 규제에 따른 어려움을 겪을 필요가 없게 됐다.
◇27일 ‘데이터 3법’ 모법 소위 주목
우리 정부도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라는 대통령 소속 조직을 통해 개인정보 활용, 보안 문제 개선을 시도하고 있고 ‘데이터 3법’으로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EU와 본격적인 협의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럽이 요구하는 독립적인 인사와 예산권을 가진 국가차원의 개인정보보호기구가 데이터 3법 개정을 통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2018년 11월 발의된 후 계류 중인 데이터 3법 개정안이 언제 통과되느냐다. IT업계가 27일 열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법안소위에서는 데이터 3법 가운데 모법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다룰 예정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크게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 부적격 논란에 국회에서는 경제활성화 법안 논의가 자취를 감춘 상태다. 데이터 3법 개정안은 여야가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조국 사태’가 걸림돌로 등장한 셈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법안소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국정감사, 내년 4월 총선 등에 밀려 법안 처리가 계속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의 원유라고 불리는 데이터를 안전하고 원활하게 활용하려면 개정안 처리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코리아스타트업포럼·한국게임산업협회·한국온라인쇼핑협회·한국온라인광고협회는 26일 국회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에게 데이터 3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GDPR 시행 후에 작은 업체들의 트래픽이 25% 감소하고, 그 트래픽이 구글, 페이스북으로 넘어갔다는 통계가 있다. 중소 업체들이 부담을 느껴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데이터 3법 개정안 통과가 늦어질수록 국내 업체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정보를 비식별화(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처리)하면 이 데이터를 판매하거나 다른 데이터와 결합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며 “결제 데이터를 활용한 상권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지만, 규제가 막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26/20190926031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