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방송] 블록체인과 미디어 지형 변화: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언론의 등장
필자는 2004년 ‘미디어몹(Mediamob)’이라는 블로그 기반의 독립 미디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미디어몹 프로젝트는 블로그가 가진 가능성을 미디어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프로젝트였는데, 여기서 필자는 두 가지 실험을 하고 싶었다.
첫 번째는 종이신문의 헤드라인 영역에 해당하는 온라인 미디어 메인 페이지 편집권을 독자에게 넘기는 시도다. 즉 글쓴이의 평판, 콘텐츠에 대한 사용자의 추천 혹은 공감, 댓글이나 인용과 같은 콘텐츠에 대한 반응 등을 수치화해 가장 주목받는, 혹은 가장 가치 있는 기사라고 많은 사람이 평가한 기사를 자동으로 메인 페이지에 배치하는, 일종의 자동 편집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 것이다. 개인들의 집합적인 판단에 기반을 둔 집단지성을 이용해 자동으로 콘텐츠를 필터링하는 시스템 말이다.
자동 편집 시스템은 실제로 개발돼 미디어몹의 운영에 사용됐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가 편집권을 놓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의견과, 편집권을 미디어 소비자에게 완전히 맡겨야 한다는 의견 사이의 대립이 팽팽했다. 결국 자동 편집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걸러진 콘텐츠를 운영자가 최종 선별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 자동 편집 시스템은 편집자가 쓸데없는 글까지 일일이 봐야 하는 수고를 혁혁하게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절반의 성공이었던 셈이다.
이용자의 콘텐츠에 암호화폐로 보상
필자가 하고 싶었던 두 번째 실험은 메인 페이지에 올라온 블로그 기사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었다. 당시 블로그 문화가 급격하게 확산하면서 개인들이 만들어낸 양질의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콘텐츠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콘텐츠에 왜 돈을 지불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필자는 기사에 대한 보상안을 제출하고 내부에서 설득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두 번째 실험은 사고 실험으로 끝나고 말았다. 가난한 미디어 벤처의 한계이기도 했고,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는 공짜라는 당시의 지배적인 사고가 만든 한계이기도 했다.

10년도 훨씬 지난 2016년 6월, 필자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고 심취해 있을 때, 미국에서 스티밋(Steemit)이라는 서비스가 출시됐다. 스티밋은 암호화폐와 블로그를 결합한 첫 프로젝트다. 부럽게도 스티밋은 필자가 하고 싶었던 두 가지 시도를 모두 구현했다. 첫 번째는 자동 편집 시스템이다. 스티밋은 글을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투표(voting)’-여기서 투표는 ‘좋아요’ 혹은 ‘추천한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를 하고, 많은 투표를 받은 사람의 글이 점점 상위에 노출된다. 즉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은 글은 점점 더 상위에 노출되어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자동 편집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필자가 실험을 종료한 이후 10년 남짓한 기간에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콘텐츠 필터링 시스템이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스티밋의 진정한 혁신은 필자가 하고 싶었던 두 번째 실험, 즉 좋은 글을 작성한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를 도입한 것이다. 스티밋은 스팀(Steem)이란 자체 암호화폐(cryptocurrency)를 가지고 있다. 스티밋에서 좋은 콘텐츠에 대한 보상은 바로 이 암호화폐로 제공된다. 스티밋의 투표 기능에는 좋은 글을 추천하는 기능과 더불어 해당 글에 보상을 제공하는 기능이 결합되어 있다. 스티밋 회원의 투표를 받으면,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저자에게 스팀으로 보상한다. 글을 쓴 저자뿐 아니라 좋은 콘텐츠를 먼저 발굴해서 먼저 추천한 사람, 댓글을 써서 해당 콘텐츠에 생동감을 부여한 사람 역시 소액의 보상을 받는다. 투표 로직, 투표 파워에 따른 보상량의 차이, 먼저 발굴한 사람에 대한 보상, 댓글을 쓴 사람에 대한 보상 등 각종 정책이 모두 알고리즘으로 구현되어 자동으로 배분된다. 자동 편집 시스템뿐만 아니라 자동 보상 시스템까지 구축한 것이다.
스팀은 이미 여러 암호화폐 거래소에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법정화폐로 교환할 수 있다. 스티밋은 온라인 미디어 서비스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혔던 문제, 즉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만든 콘텐츠에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했다.
언론인의 자율성 극대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활용해 한층 더 공격적으로 대안 미디어를 구축하려는 프로젝트가 있다. 그것이 바로 2017년 6월에 시작된 시빌(Civil, joincivil.com)이란 프로젝트다.

시빌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언론을 만들겠다는 취지에 따라 언론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오던 것들, 언론이 광고주의 눈치를 보거나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열을 당하는 문제, 그리고 독자와 만나는 지점이 포털, SNS, 검색엔진으로 옮겨가면서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되는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프로젝트다. 시빌이 제시하는 해법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미디어 집단이 자신들의 뉴스룸을 만들어 직접 운영할 수 있는 탈중앙화한 미디어 플랫폼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시빌은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는 dApp(댑 혹은 디앱, decentralized Application) 서비스로 개발되는데, 이는 기존의 서비스가 제공할 수 없는 네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탈중앙화한 서비스 환경은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해준다. 이더리움이란 2014년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시작한 프로젝트로,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s)’ 기능을 활용해 블록체인 위에서 온갖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분산화한 서비스 개발 플랫폼(decentralized application development platform)이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탈중앙화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인터넷상에 흩어져 있는 수백 대에서 수만 대의 컴퓨터가 P2P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이 네트워크가 마치 거대한 하나의 서버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P2P 네트워크는 이론적으로 단 한 대의 컴퓨터만 살아 있어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인터넷상에 흩어져 있는 P2P 네트워크 위에서 서비스를 구현하면 개별 국가가 중지시킬 수 없는 서비스 환경이 구축된다. 더구나 한번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는 누군가 임의로 삭제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개별 국가가 정보를 검열하기 위해 서버를 중지시키거나 데이터를 강제로 삭제 혹은 조작할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블록체인은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 가장 최적화한 환경을 제공한다.
두 번째, 이더리움의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활용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온갖 프로그램을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할 수 있다. 이 말은 시빌이 단순히 블록체인 위에서 뉴스를 저장하거나 발행하는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스티밋이 구현한 것처럼 추천을 하거나 댓글을 달거나 기사를 SNS에 공유하거나, 독자가 기자의 글에 감동해 보상을 제공하는 것까지, 온라인 미디어로서 작동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스마트 컨트랙트로 개발된 프로그램이 위·변조되지 않도록 보장해주기 때문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사용하면 그 이전의 프로그램 구조보다 훨씬 안전하고 확실하게 계약 실행이 보장되는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 (이더리움 위에 올라가 있는 dApp들은 다 이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현된다. 이미 이더리움 위에는 2018년 2월 23일 기준으로 dApp 1,117개가 등록되어 있다.) 물론 현재 시점, 이더리움의 개발 환경으로는 다소 제한적인 프로그램 개발만 가능하지만, 이 문제는 향후 몇 년 안에 극복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의 기사 발행권 100% 보장
세 번째, 시빌은 독립적인 화폐 시스템, CVL을 가지고 있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포함해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제공하는 블록체인들은 각 dApp 프로젝트가 자체적으로 발행한 암호화폐(cryptocurrency, 또는 일반적으로 토큰이라고 한다)를 내부 가상화폐(virtualcurrency)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즉 각 dApp은 자체적으로 유통하는 화폐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스팀과 비슷한 혹은 전혀 다른 구조의 보상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빌이 멤버십(월정액) 모델, 건별 결제, 무료 기사, 취재 전에 취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 기능, 평판 조회 등 온라인 미디어들이 최근에 실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델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데에는 이들이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화폐 시스템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배경이 있다.
네 번째, 시빌은 DAO(분산자율조직,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라는 새로운 조직 모델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이유는 블록체인이 중개자(middleman)를 없애고 당사자들끼리 직접(Peer-to-Peer) 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DAO 개념은 이미 기존에 여기저기서 사용되던 개념을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의 백서에서 정식화하면서 블록체인 생태계의 핵심적인 조직 원리로 부상했다. DAO란 조직의 핵심 원리와 정책을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현한 상태에서, 그 조직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각자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든 협업할 수 있는 그런 조직 형태를 의미한다. DAO 조직의 기본적인 작동 원칙, 철학, 정책 등은 계약의 형태로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현되는데, 한번 구현된 계약은 위·변조되지 않고 조건에 따라 반드시 실행된다.
따라서 DAO에 참여한 개인들은 기존의 조직에서 회장, 부회장, 총무, 이사진, 편집장 등 상층부가 조직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오던 것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컨대 시빌의 뉴스룸에서 어떤 기사의 발행권을 온전히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부여하기로 정책을 정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편집장 혹은 관리자가 해당 기사를 편집하거나 삭제하고 싶어도 해당 기자의 허용 없이는 편집이나 삭제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편집장 혹은 권력의 상층부는 기사의 내용을 마음대로 수정하고 심지어 삭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DAO 조직에서는 계약에 정의된 내용을 거스르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기자가 제대로 된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지, 기사 내용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검증하는 장치는 필요하다. 실제로 시빌의 구성 요소를 보자면 각 뉴스룸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이들을 감시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저널리즘 자문위원회, 평판 체크, 팩트체커)를 구성하는 데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장치가 언론사의 회장, 사장, 편집장 등 권력 수뇌부의 수직적 권력을 유지하는 기제로 작동했다면, 시빌은 기자들의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하면서 이러한 감시 장치가 기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 역시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현되어, 사전에 정의된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직을 구성하는 계약 조건을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성해놓으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던 위계 구조의 존립 근거가 상당 부분 사라진다. 즉 실질적인 분산자율조직(DAO)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 스마트 컨트랙트 등의 기술을 활용해서 언론인이 원하는 DAO 기반의 독립 미디어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제공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블록체인의 파괴력
시빌은 블록체인 기술이 제공하는 모든 가능성을 활용해 기자와 독자가 직접 뉴스를 거래하는 오픈마켓을 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실행하고 있다. 기자들과 각 뉴스룸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고, 독자는 자신에게 유용한 콘텐츠를 제공한 콘텐츠 생산자에게 직접 보상을 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언론이 극복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제공해줄 것이다. 물론 한계는 존재한다. 아직 이더리움 블록체인이 시빌과 같은 서비스를 작동하기에 충분한 성능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수년 정도면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스티밋은 출시된 지 1년 반 동안 가파르게 상승하며 전 세계 웹사이트 순위 1,000위에 도달했다. 스티밋은 현재까지 시장에 나온 블록체인 기반의 응용 서비스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스티밋이 블록체인 기반 블로그 서비스의 정답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스티밋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미디어 서비스에 결합될 때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2018년부터 시빌은 총 30개의 뉴스룸이 모인 ‘1차 함대’를 출범시킨다고 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DAO 형태의 언론을 구현하려는 시빌의 실험은 1년 후 혹은 2년 후 과연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까?
21세기, 인터넷에 이어 블록체인 기술이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는 시점,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는 언론인이 스티밋과 시빌의 실험에 주목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pfjra_&logNo=221227985912&redirect=D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