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방송] 참관기: 페이지뷰·방문자수 버리고 독자 데이터를 좇아라
2009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11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아시아(Digital Media Asia)> 콘퍼런스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사회· 경제적으로 여러 공통점을 가진 아시아 국가 언론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성공과 실패를 공유하며, 대안을 찾는 자리다. 지난 10월 29일 홍콩에서 열린 콘퍼런스에는 20개 국가, 120개 언론사 및 관련 업체에서 온 350명의 기자와 언론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2박 3일간 교류의 기회를 가졌다.
독자는 곧 데이터
뭐니 뭐니 해도 돈(monetizing)에 대한 논의가 콘퍼런스 전체를 관통하며 가장 비중있게 다뤄졌다. 특히 ‘디지털 시대 어떻게 수익을 내야 하나?’ 가 핵심이었다.
첫 번째 대안은 ‘독자에 대한 재정의’였다.

미디어 컨설턴트인 그레고르즈 피에초타 (Grzegorz Piechota)는 디지털 시대에 언론사와 독자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독자=광고수익’이라는 공식은 이미 깨졌고, 언론사는 이제 독자를 수익다각화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자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독자=데이터). 따라서 향후 언론사는 독자로부터 얻은 데이터 자체를 다른 상품 판매 업종에 팔거나, 직접 독자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된다면 언론사는 기사를 제공하는 대가로 독자 정보를 수집하는 새로운 목적의 기업이 되는 셈이다.
관련해서 우크라이나 신문사 RIA의 부동산 중개, 중고차 판매 사업이 성공 사례로 소개됐고, 특히, 폴란드의 비르투왈라 폴스카(Wirtualna Polska)의 경우 신문사 사이트를 활용해 패션, 생활잡화, 여행, 금융상품을 판매하는데 신문사 전체 수익의 50%가 여기서 나온다고 한다.

‘독자’에 대한 강조는 다양한 관점에서 변주됐다. 덴마크의 미디어 컨설턴트인 스테펜 댐보르(Steffen Damborg)는 “당신네 언론사는 독자를 얼마나 잘 알고 있나?”라고 물었다. 독자의 구독 행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나온 통계를 기반으로 서비스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지에 대해 꼬집었다. 이어 그는 독자의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독자가 원하는 주제의 기사를, 독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독자가 원하는 시간에 서비스하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해볼 것을 주문했다.
스페인 카탈루냐(Cataluña)의 지역 언론 ARA의 사례도 관심을 끌었다. 2015년 ARA는 스페인 언론계에 서는 최초로 유료 독자 모델을 도입했다. 이후 ARA 는 유료 구독자 정보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독자 프로 파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서 정교하게 타깃팅 한서비스를 하나 하나 개발했다. 주말판 신문을 시작으로, 문학, 교육, 경제, 대중문화, 자동차, 과학, 요리, 페미니즘, 만화 등을 별도의 주제로 독자들의 니즈에 철저히 대응하는 10개의 버티컬 매체를 하나의 편집 국에서 제작해 서비스했다. 그 결과 2018년 카탈루냐 지역 전체 언론 산업은 평균 22% 매출 감소를 기록했지만, ARA만 유일하게 전년 대비 5.2% 성장했 다. 또한, 광고 수익의존율도 낮아졌다(정기구독 수익 63% : 광고 수익 27%). 더 나아가, 유료 독자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ARA는 향후 직접 상품 판매와 다른 기업과의 B2B 사업에 도전할 계획이다. 독자로부터 답을 찾은 130여 명 규모의 지역 언론사의 목표는 2020년까지 40만 명의 유료구독자를 확보 하는 것이다.


수익모델을 이야기하는데 파이낸셜타임스 (Financial Times)의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었다. 2019년 마침내 유료 구독자 100만을 달성했던 터라 발표는 더욱 설득력 있었다.
발표를 맡은 내슈아 갤러거(Nashua Gallagher) 파이낸셜타임스 아시아 태평양 마케팅 본부장은 “30년 전에는 70%의 수익이 광고에서 나왔지만, 100만 유료 독자를 달성한 지금 구독자의 80%가 디지털이고, 65% 수익이 콘텐츠 판매 수익”이라며 과거와 현재를 극명하게 비교했다.
그는 성공의 비결을 딱 둘 꼽았다. 첫째는 “독자 관여도를 높이는 것을 회사의 최우선 목표로 삼을 것”, 둘째는 “독자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것”이었다. 모두 독자 중심 철학이다. 발표자는 대담하게 “방문자수 (UV, Unique Visitor)와 페이지뷰(PV, Page View) 자체는 독자 관여도를 높이는 것과 관계가 없다”고 고백 했다. “독자 데이터를 추적하고 측정해서 독자가 어떻게 콘텐츠를 소비하는지를 밝혀내는 작업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자를 분석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공유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자의 이용 패턴을 다양한 요소로 수치화·공식화해 지표로 삼고 독자 관여도를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리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뉴스 소비가 포털사이트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국에서는 독자 데이터 수집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라 특히 더 부러운 부분이었다.
키워드는 ‘디지털’과 ‘인공지능’
독자 데이터를 측정하고 분석하려는 노력은 자연스 럽게 인공지능과 연결된다. 아울러 인공지능을 활용해 그동안 풀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도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경우 인공지능을 기사 태깅에 활용한다. 주제에 따라 타깃팅된 기사의 주목도가 높다는 점에 착안해, 기존에는 사람이 일일이 관련 주제어를 입력했던 것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했다. 그 결과 전체 기사의 98%에 관련 주제 정보를 넣을 수 있었고, 검색엔진 최적화, 관련 기사 추천, 관련 기사 묶음 서비스 등이 가능해졌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신문사는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독자의 콘텐츠 이용행태를 학습하고, 분석해서 향후 충성 독자층이될 독자들을 예측·발굴해 맞춤형 콘텐츠 노출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한편, 인공지능을 가짜뉴스를 걸러내는데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작년 5월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컸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기금을 마련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짜뉴스 대응 시스템을 개발해 서비스했다. 인공 지능의 자연어 분석 능력에 기반해 수집된 기사를 분석하고, 별도로 구축한 가짜뉴스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인공지능이 진위를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독자는 뉴스를 읽다가 가짜뉴스로 의심되는 기사를 인터넷 브라우저, 텔레그램, 문자 등으로 시스템에 전송하고, 전송된 기사에 대해 인공지능이 진위를 판단하게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말레이시아는 이시스템을 활용해 기사 표절을 가려내는 서비스도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 두 서비스는 대선 기간 동안 하루에 수천 명이 이용했지만, 대선 이후에는 이용이 활발하지는 않다고 한다.
정부 차원이 아닌, 개별 언론사 차원에서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실험도 소개됐다. 스트레이트타임스 (The Straits Times)를 발행하는 싱가포르프레스홀딩 스(SPH)의 ‘가짜뉴스 지킴이(Fake News Guard)’ 서비스가 그것이다. 역시 인공지능의 자연어 처리 능력을 활용한다. 젠슨 보위(Jensen Boey) SPH 기술본부 장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 이 프로젝트는 독자 이용 행태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과학적인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데이터 분석 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다 가짜뉴스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자,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짜뉴스 판별 서비스를 개발하게 됐다. [그림 6]
단, 말레이시아의 경우와 달리 SPH의 시스 템은 자사의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뉴스의 진위를 판별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통해 독자 서비 스를 강화할 목적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언론사에 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서비스를 통해 현재 독자들의 관심 주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독자의 궁금증에 대응하는 기사를 발 빠르게 서비스 하면 더 많은 독자가 유입될 거란 셈법이다.
기술이나 전략보다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
콘퍼런스 전체에 깔려있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디지털’과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오랜 시간 고민해왔던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조직 문화’였다.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나, 또는 데이터에 기반해 독자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어서, 기술이나 전략보 다도 조직 문화가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통찰이었다.
미디어 컨설턴트 피에초타(Grzegorz Piechota)는 재미있는 질문을 한다. 그는 “만약 전 세계적으로 신망이 두터운 편집국장을 영입할 수 있고, 디지털 마인드가 충만하면서 동시에 언론사가 원하는 만큼 투자할 수 있는 사주를 모실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가?” 그리고는 워싱턴포스트 (Washington Post)의 예를 이야기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2년 12월 영화 <스포트라이트 (Spotlight)>에도 등장하는 미국 최고의 저널리스트 라고 평가받고 있는 마티 바론(Marty Baron)을 영입 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3년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아마존의 소유자이자,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워싱턴포스트의 소유 주가 된다. 저널리즘과 자본, 기술 등 최상의 조건을 한꺼번에 충족시켰지만, 워싱턴포스트는 그로부터 3년여 동안 구독자 수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7년이 되어서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되었고 급격한 변화를 거쳐 1년 후인 2018년에 100만 디지털 구독자에 도달한다. 2) 발표자는 워싱턴포스트의 예를 통해 “한두 가지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직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만 비로소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외에도 올해 콘퍼런스에서는 ‘네이티브 광고’와 ‘독자 후원 모델’도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다. 최근 한국에서도 독자 후원 모델이 실험되고 있는 상황인데, 다른 나라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네이티브 광고(및 브랜디드 콘텐츠)에 대해서는 저널리즘 차원의 고민이라기 보다는 효과적인 수익창출 방법으로 환영받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아울러 구글과 페이스북, 오라클 등이 콘퍼런스 공식 스폰서로 참여했으며, 특히 구글은 리차드 깅그라스(Richard Gingras) 구글뉴스 부사장이 직접 콘퍼런스 연사로 참석해 “언론사가 수익을 내야, 구글도 수익을 낸다”, “구글은 검색 결과에 손대지 않는다”, “언론사가 저널리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지원하겠다”는 원론적인 메시지를 아시아 언론인들에게 남기려고 무척 노력했다.
350명이 넘는 언론인들이 모여, 2박 3일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지만 그 누구도 ‘정답’을 찾아 돌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같은 콘퍼런스 공간 안에서조차 한편에서는 “유료화(paywall)가 답이다”라는 주장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유료화는 독자를 파편화할 뿐 독자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마케팅으로 가야한다”는 상반된 주장이 공존했다. 그렇다면 과연 콘퍼런스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지막 세션 토론자로 나온 게리 리우(Gary Liu)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CEO는 “이제까지의 방법으로는 더 이상 안된다는 것을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같은 배를 탄 아시아 언론 인들이 더 자주 모여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행사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작별의 말을 남겼다. 누가 뭐래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살아남겠다는 의지만큼은 값졌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pfjra_&logNo=221751295575&redirect=D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