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방송] 글로벌 팩트체킹 서밋 참가기 : 팩트체크의 대중화, 가짜뉴스의 바다에서 희망봉 될까
‘대중은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번 회의에서는 일찌감치 팩트체크를 시작한 미국, 유럽뿐 아니라 인도나 방글라데시, 필리핀에서 온 팩트체커들이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팩트체크의 필요성’ 같은 기본적인 논의는 오히려 드물었다. 가장 자주 언급된 주제는 대중에게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가짜뉴스와 싸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제는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흘간 회의 내내 계속됐다.
“요즘 사람들은 읽고 싶어 하지 않아요.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집중하는 시간은 매우 짧기 때문에 콘텐츠도 요약적이어야 합니다.”
<왓 더 팩트> 진행자 케이티 샌더스(Katie Sanders)는 “팩트체크 기사를 꼬박꼬박 읽는 사람들은 사실 팩트체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가짜뉴스를 쉽게 믿는 사람들이 팩트체크를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같은 수요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폴리티팩트가 선택한 것이 TV쇼다. 샌더스는 “미국에서 TV 시청자는 보통 교육 수준이 낮고 언론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며 “<왓 더 팩트>로 더 많은 팩트체크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독자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라
독자를 끌어오기보다 아예 독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도 한창이다. 아프리카체크는 음성 서비스 스타트업인 볼륨(Volume)과 함께 팩트체크 오디오 방송 <왓츠 크랩 온 왓츠앱(What’s crap on WhatsApp?)>을 만들었다. 방송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메신저 앱인 왓츠앱(WhatsApp)을 통해 이뤄진다. 왓츠앱 이용자들이 오픈채팅방에 올린 팩트체크 거리를 바탕으로 짧은 오디오 방송을 만든다. 오디오 방송은 음성 메시지로 채팅방 이용자들에게 전달된다. 예를 들어 왓츠앱에서 “우유와 감기약 시럽을 섞어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얘기가 돌면 이를 2~3분짜리 팩트체크 방송으로 만드는 식이다.
이들이 왓츠앱 음성 메시지를 이용한 이유는 왓츠앱이 많은 이용자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가짜뉴스가 활발히 유통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짜뉴스가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와 같은 소셜 메신저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것처럼 해외에서는 왓츠앱이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디어 스타트업 볼륨 창업자인 폴 맥널리(Paul McNally)는 자신의 라디오 방송을 가리켜 “문제를 일으키는 곳을 해결의 방법으로 이용하는 해독제”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팩트체커들이 동영상을 만들고, 쉬운 언어를 쓰고, 메신저 속으로 들어간 것은 팩트체크가 필요한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이다. 스페인의 팩트체크 기관 말디타(Maldita) 대표인 클라라 히메네스 크루스(Clara Jimenez Cruz)는 언론인, 정치인의 관심사와 일반 대중의 관심사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그래프를 보여주며 말했다.
“사람들이 쓰는 트위터와 왓츠앱으로 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종류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말디타는 지속 가능한 팩트체크를 위해 탄탄한 멤버십을 구축했다. 지난 2월까지 1,649명의 후원자를 통해 7만 7,260유로(약 1억 273만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목표액의 223%에 해당하는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후원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비결은 ‘소속감’이다. 말디타 후원자들은 팩트체크할 주제를 제시하기도 하고 팩트체크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크루스 대표는 “회원들이 스스로 팩트체크의 일부를 담당한다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며 “참여에 대한 대가는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팩트체커들의 이 같은 고민은 대부분 우리 언론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레거시 미디어들도 신문 구독자가 줄고 방송 뉴스 시청자가 줄면서 인터넷 포털과 SNS를 통한 뉴스 공급을 늘리고 있다. 대중 관심사를 빠르게 캐치하려는 노력도 많아졌다.
‘받아쓰기’를 대체하는 AI
하지만 대중의 관심사에 빠르게 대처하면서 깊이 있는 팩트체크까지 챙기기란 쉽지 않다. 보통 사실 검증은 뒤로 미뤄지기 쉽다.
팩트체크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빌 어데어(Bill Adair) 듀크대 교수는 글로벌팩트6 환영사에서 “미국의 새로운 팩트체크 트렌드는 ‘임베디드(embedded, 내장된)’ 팩트체크”라고 말했다. 이는 말 그대로 기사 안에 팩트체크를 내장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발언을 쓴다면 발언 뒤에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함께 명시해주는 식이다. 근거 없는 주장이 진실로 둔갑하는 일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다.
정치인의 연설이나 토론회 현장 기사를 쓰면서 동시에 ‘내장된 팩트체크’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팩트체커들은 이처럼 빠른 실시간 팩트체크에 관심을 갖고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팩트체크 자동화(Automated fact check)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글로벌팩트6에서는 여러 기관의 AI 활용 사례가 발표됐다.
AI 팩트체크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체케아도(chequeado)는 AI ‘체케아봇(Chequeabot)’을 선보였다. 체케아봇은 온라인에서 많이 거론되는 주장을 선택, 추출하고 공식적인 자료(통계 등)를 찾아 타당성을 검토해준다. 물론 주장의 문맥과 상황을 고려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최종 판정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하지만 체케아봇은 어떤 주장에 관한 자료를 실시간으로 찾아내는 데 탁월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체케아도의 파블로 페르난데스(Pablo Fernandez) 국장은 “팩트체크는 시간과 돈이 든다. 그러나 기계가 반복적인 작업을 도와주면 우리는 복잡한 문맥을 파악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팩트체크의 속도가 중요한 이유로 “이슈가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는 동안에 팩트체크가 이뤄져야 가장 큰 임팩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 강조했다.
영국의 풀팩트(Full Fact)도 비슷한 AI 팩트체크를 시도하고 있다. AI가 실시간으로 여러 주장들을 모니터하고 이미 검증된 사실이나 원본 자료와 대조하면서 팩트체크를 한다. 팩트체커에게 가장 고된 업무인 관련 모니터링과 자료 검색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셈이다. 풀팩트는 텍스트뿐 아니라 실시간 발언도 곧바로 팩트체크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팩트’는 복잡한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AI가 완전히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믿는 팩트체커는 거의 없다. 다만 AI가 가짜뉴스와 싸우기 위한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점차 커지고 있다.
매체 간 협업은 큰 사건에 효과적
팩트체크를 주도하는 기관들은 대부분 비영리 기관이나 스타트업이다. 이들의 실험적인 시도를 신문, 방송 같은 레거시 미디어와 곧바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 글로벌팩트6에서는 레거시 미디어의 다양한 팩트체크 사례를 엿볼 수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협동 팩트체크’ 사례였다. ‘팩트체크 EU’는 유럽의 13개 국가, 19개 매체가 연합한 프로젝트다. 프랑스의 리베라시옹, 르몽드와 같은 신문사뿐 아니라 유럽에 기반한 스타트업, 비영리 팩트체크 기관 등이 참여해 10주간 공동으로 팩트체크를 했다. 유럽 선거를 앞두고 국경을 뛰어넘는 팩트체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각국의 기자들이 이슈를 함께 검증하고 검증 결과를 공유했고, 팩트체크 결과는 홈페이지에 영어 및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 공개했다. 업무는 주로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고 한다.
팩트체크 EU에 참가한 리베라시옹의 폴린 물로(Pauline Moullot) 기자는 “국가마다 이슈에 대한 관심사가 달랐고, 언어도 달라 충분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매체들은 팩트체크 협력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반응이라고 한다. 물로 기자는 “파급력이 큰 사건일수록 협력이 더욱 효과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성당 화재 당시 유럽 각국에서 가짜뉴스가 쏟아져 나왔지만 팩트체크 EU라는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팩트체크 결과를 전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각 매체들이 협력을 통해 가짜뉴스에 대한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거뒀다”고 물로 기자는 말했다.
비영리 기관을 중심으로 팩트체크가 활성화된 것은 왜일까. 팩트 확인이 당연한 일이어야 할 레거시 미디어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레거시 미디어의 기자로서 이번 글로벌팩트6는 위기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희망도 품게 했다. 철저히 독자를 분석하고,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기 위한 AI 기술을 개발하는 팩트체커들을 보고 있자면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위기감도 들었다. 하지만 레거시 미디어가 팩트체크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pfjra_&logNo=221625008890&redirect=Dlog